Nothin' on XXX
  • 【샘플 번역 제2회:TCW】 Paradox Live Hidden Track "MEMORY"
    2021. 08. 26

     

     

     

     

     

    줄거리

     

    대인기 프로젝트 소설판이 등장! Paradox Live 종료 후, 「BAE」 「The Cat's Whiskers」 「cozmez」 「나쁜 녀석들」은 되찾은 평온 속에서 저마다의 과거를 떠올린다. 14명의 래퍼가 이뤄내고 싶어했던 마음의 원점이 네 가지 기억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 앤이 알렌, 하준과 만나 BAE 를 결성하기까지의 비화를 공개!
    • 사이몬, 칸바야시, 츠바키 이 세 명의 아름답고도 덧없는 과거의 일상을 말한다 —
    • 나유타와 시키의 만남, 그리고 산타를 믿는 카나타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
    • 레오가 스이세키 조직에 가입한 직후, 이오리로부터 사츠키 그리고 호쿠사이와 함께 여름 축제에 선보일 무언가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그 의도는 과연…?

     

     

     

    오직 이곳에서만 읽을 수 있는 오리지널 스토리가 가득!

    그럼 제2회 「The Cat’s Whiskers」 의 이야기를 즐겨보세요.

     

     


     

     

     

     

     

     

    Birdhouse Any Remember.

     

     

     

     

     

     

     

     

    비가 내리는 어느 밤이었다.

     

     

    Paradox Live 건 이후로 요헤이는 Bar4/7 에 머무르고 있었다. 비로 인해 손님이 적은 날에는 특히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는 밤이었다.

     

     

     

     

    「……요헤이. 최근 들어서 피아노를 자주 치네.」

    「뭐 그렇지. 비가 오는 날엔 왠지 치고 싶어져.」

    「저요! 류 군, 좀 더 BGM 같은 거 요청할래요!  검은 뿔테 마왕DX(디럭스) 최종 결전 테마!」

    「뭐냐, 그 기묘한 요청은……」

     

     

     

     

    사이몬은 잔을 기울이고, 칸바야시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류는 검은뿔테 마왕DX──고양이를 머리에 얹은 채로 소파 위에 뒹굴고 있었다. 머지않아 칸바야시가 연주를 끝내자 드디어 빗소리만이 바를 지배했다.

     

     

     

     

    「시키 그 녀석, 우산은 잘 챙겼으려나.」

    「류 군이 가방에 넣어줬으니까 괜찮아! 은색에 작고 멋있는 걸로!」

    「셰이커가 하나 없어진 것 같더니만 너였냐, 류……」

     

     

     

     

    The Cat's Whiskers 의 일상은 달리 변하지 않은 듯했지만, Paradox Live 를 겪고 확실하게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우선……시키의 외출이 잦아졌다.

     

     

    나유타와의 ‘그 일’ 로 말미암은 과거와 오해가 해결되자 시키는 cozmez 의 쌍둥이와 자주 놀러 다녔다. 시키를 괴롭히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나 웃음이 많아진 것은 틀림없다. 타고난 심약함은 여전하지만 점점 밝은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또 하나. 사이몬과 칸바야시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바의 토지 매수 건이 해결되었다.

     

     

    Paradox Live 가 종료됨과 동시에 부동산 회사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부드러워졌다. 이는 알터 트리거사(社)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꼴이었다. 비록 우승 상금을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아주 여유롭게 토지와 가게를 매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게를 지킨다는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그리하여──The Cat's Whiskers 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 눈앞에 닥친 것을 겨우 지켜냈을 뿐.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있잖아, 사이몬.」

    「응?」

    「네 안에 있는 츠바키 씨는 웃고 있어?」

    「……그럼. 그래서 요헤이도 피아노 연주를 하는 거잖아?」

    「……뭐 그렇지.」

     

     

     

     

    칸바야시의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린 빗방울이 유리창에 세로로 긴 선을 그리고 있었다.

     

     

    분명 그날 밤도……

     

     

     

     

    너무도 잔잔하고 평화로운 밤. 부드러운 빗소리의 박자가, 소중한 가게 만큼은 확실히 지켜냈다는 실감과 함께 칸바야시를, 사이몬을……아득한 과거의 기억으로 이끌었다.

     

     

     

     

     

     

     

     

     

    확실히, 그날 밤도 비가 내렸다.

     

     

     

    사람의 목소리도 건물의 불빛도 번지게 하려는 듯이 빗소리가 밤을 에워싸고 있었다. 거리는 마치 상(喪)중인 것처럼 조용했고, 밖을 걷는 것이 왠지 죄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다.

     

     

     

    젖은 아스팔트 거리를 길고양이처럼 걷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싸구려 셔츠에, 낡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무거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젖은 앞머리가 시야를 가려도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이윽고 좁은 시야는 발밑으로 떨어져, 어디가 앞인지도 모르는 듯한 걸음걸이였으나 신기하게도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빗속. 들릴 것 같지 않던 피아노 소리가 어째서인지 귓가에 맴돌았다. 그 소리를 따라 걷다 한 가게 앞에 이르렀다.

     

     

     

     

    Bar4/7.

     

     

     

    간판에 적힌 이름은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좁고 무거운 문. 이는 바깥세상과 가게 안을 분리하기 위함이었다. 아는 사람에게 듣자하니, 바는〝Hideout〟(조폭의 은신처) 같은 곳이라고 한다. 가게 안에 있는 손님을 지키기 위해 입구를 좁게 만든다고. 그리고 바텐더는〝부드러운 횃대[각주:1]〟를 의미한다. 바는 지친 사람을 상냥히 풀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분명 그 피아노 소리는 바의 육중한 문을 통해 그의 귓가에 닿은 것이리라. 그 부드러운 음악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렇게 확신하며 그는 무거운 문에 몸을 기대듯이 열어젖혔다.

     

     

     

     

     

    그곳에──동백꽃이 피어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듯한 부드러운 선율이 있었다. 봄의 태양보다 포근하고 따스한 밝은 빛이 가득 차 있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는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그날 밤 그는 진정한 의미의〝음악〟을 만났다.

     

     

    당시 유즈키 츠바키라 불리던 그녀와 나오아키라 라는 이름의 남자. 돌연 바에 나타난 어린 청년을 보고 조금 놀란 두 사람은 잠시 후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가게에 들어가 문을 연 그때, 세상과 동떨어진 가게 안에는 울고 싶어질 만큼 따뜻한 공기와 음악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열일곱 살이던 칸바야시 요헤이의 인생이 변해 가기 시작한 밤이었다.

     

     

     

     

     

     

    열아홉 살이 된 칸바야시는 바 문의 육중함을 좋아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바깥을 벗어나, 쾌적한 실내로 뛰어들자 이윽고 목표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사이몬. 지금 시간 돼?」

    「여기서 근무한 지 꽤 됐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바에 들어오는 미성년자는 너뿐이야, 요헤이.」

     

     

     

     

    웃으며 칸바야시를 맞이한 사이몬은 바 카운터 가장 안쪽 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라임 주스와 그레나딘 시럽, 설탕 시럽을 넣고 살짝 흔들어 둥근 얼음을 넣은 고블렛 잔에 담았다. 마지막엔 소다를 넣어 가득 채웠다.

     

     

     

     

    「썸머 딜라이트 나왔습니다.」

    「폼 잡아봤자 어차피 주스잖아.」

    「술을 내놓을 리가 없지.」

    「적어도 라임 조각을 올리는 성의라도 보여. 메뉴도 멋대로 만들기나 하고 말이야.」

     

     

     

     

    턱을 괴고 있던 칸바야시는 살짝 뾰로통한 표정으로 잔을 집어 붉은 논-알콜 칵테일로 입술을 적셨다. 술맛은 나지 않았지만 산뜻한 맛은 기분이 좋았다. 적당히 목을 축인 칸바야시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했던 이벤트는 반응이 괜찮았지. 기분 좋았어.」

    「그렇지. 역시 우리는 Chill 계열[각주:2] 음악성이 어울리는 모양이야. 나도 기분 좋게 가사를 썼고. 요헤이도 표현력이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던데.[각주:3]

    「뭐, 그렇지. 그 트랙은 틀림없는 최고 걸작이야.」

     

     

     

     

    대화 사이사이 칸바야시는 매우 기분이 좋은듯 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잔을 든 모습이 제법 그럴듯했다. 바에서 일하는 것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이몬은 눈가를 좁혔다. 

     

     

     

     

    「피아노 반주에 핑거 스냅 비트. 그건 상상 이상으로 잘 어울리던걸. 지붕에서 떨어져 내린 빗방울의 이미지가……」

    「칭찬하는 방식이 하나같이 너무 이론적이라니까. 뭐, 언어학이라는 걸 배우면 그렇게 되는 걸 지도 모르지만……원 쪽 일은 괜찮은 거야? 꽤 바쁜 듯한 이미진데.」

    「한가하다면 거짓말이겠지. XXXX(쿼드라 엑스) 활동에 쓸 시간은 충분해. 오히려 작사에 도움이 될 정도야.」

    「……확실히 요즘 네가 가사를 잘 뽑긴 하지.」

    「파트너한테 보증을 받다니 안심이야.」

    「게다가 그 트랙 말인데. 솔직히 어느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가 않아. ……그거 알아? 얼마 전에 했던 이벤트,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나 봐. 이대로만 가면 바다 건너편도──」

    「무뢰관처럼 단번에 지명도가 올라간다, 인가?」

    「뭐야. 말투가 불분명하네.」

    「어느 수준 이상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운이 필요해질 게 분명해.」

    「그렇게 서론을 늘리는 것 좀 고칠 수 없어? 눈은 그렇게 번쩍이고 있으면서.」

    「나약하게 들렸으려나?」

    「실력은 충분하다, 그냥 그렇게 얘기해. 네 말투는 너무 답답하다고.」

    「그래도 요헤이한테는 제대로 전달되니까.」

    「흥. 나는 너처럼 겸손하지 않아.」

     

     

     

     

    그리고는 다시금 잔을 머금는다. 달콤한 신뢰의 말에서 도망치듯이 라임의 신맛으로 혀를 가득 채운다.

     

     

     

     

    「좀 더 솔직한 단어를 써. 태연한 표정으로 마음만은 활활 타오르는 주제에.」

    「고온의 불꽃은 원래 조용히 불이 붙는 법이거든.」

    「무뢰관(정상)이 있는 곳까지 갈 거지?」

    「물론.」

    「그렇게 묘하게 겸손떠는 말을 덧붙이는 건 마음에 안 들어. 내 음악과 너의 언어가 있으면 해볼 만한 꿈이야. 운이라는 놈도 억지로 따르게 하면 돼.」

    「그 트랙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처음에는 좀 더 공격적인 랩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당연하지. 좋은 건 좋은 거야. Chill계 인지 뭔지. 샘플링이 잘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츠바키 씨의 피아노가──」

    「어머, 뭐야? 내 얘기해?」

     

     

     

     

    낮게 울리는 두 남자의 대화에 섞여든 높고 가는 목소리에 칸바야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왔구나, 츠바키.」

     

     

     

     

    사이몬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낮고 부드러운 사이몬의 목소리에는 또 하나 애정을 담은 울림이 깃들어 있었다.

    사이몬의 목소리와 칸바야시의 시선의 끝. 그 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츠, 츠바키 씨!」

     

     

     

     

    사이몬에 이어, 칸바야시의 입술은 그 이름 세 글자를 마치 국어책을 읽듯이 어색하게 따라 불렀다.

     

     

     

     

    유즈키 츠바키──당시에는 ‘사이몬 츠바키’ 라는 이름의 여성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굳이 문자를 고르자면〝凜(늠름할 름)〟이겠지, 라는 것이 사이몬의 생각이다.

     

     

     

     

    비단 같은 머릿결, 눈처럼 새하얀 피부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은 그러한 외모가 아닌, 살짝 손을 뻗거나 한 걸음 내딛는 등의 세련된 동작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즉 투명한 아름다움이라고 칸바야시는 생각했다. 그녀는 등에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심지 한 줄기가 박힌 것 같은 사람으로, 이는 내면이 강하다는 것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칸바야시는 그녀를 설명할 때 미인이라는 단어보다 ‘아름다운 사람’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사이몬과 칸바야시를 발견하고는……그야말로 동백꽃이 피어나듯 화색을 띤 얼굴로 미소지었다.

     

     

     

     

    「안녕, 요헤이 군. 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어어……놀랐어. 오늘은 가게에 나왔었구나.」

    「응. 내가 한동안 작곡에만 전념하느라 마주칠 기회가 없었지.」

    「그 말은 즉, 납득이 갈 만한 결과물이 완성됐다는 건가?」

    「아직 완성은 아니지만……연구에 지나치게 힘을 쏟는다면서, 이제 그만 하라고 나오아키라 씨한테 혼났거든. 이 바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기도 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츠바키가 뭔가에 몰두할 땐 침대에서 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니까. 쓰다 만 악보를 베개 삼아 잠들었다가, 오선지 잉크가 볼에 묻은 얼굴을 몇 번이고 보고 있으면 당연히 쓴소리도 하게 되지.」

    「정말, 나오아키라 씨!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

     

     

     

     

    츠바키는 눈썹을 늘어뜨리고 웃으면서 혼을 낸 상대──어깨를 으쓱이고 있는 사이몬──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머리칼을 조용히 손끝으로 넘겼다.

     

     

     

    그런 몸짓 하나도 바의 불빛 아래서 보면 신기한 윤기가 돌아 눈길을 끈다. 그래서 칸바야시는 피아노 연주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가늘고 긴 약지. 그 아래 감겨있는 은백색 반지를 자신도 모르게 주시하고 만다. 그러다 문득 잔을 닦던 사이몬의 손끝으로 의식이 향한다. 같은 디자인의 은백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래서. 내 얘기를 하던 중이었어?」

    「아아──」

     

     

     

     

    츠바키가 앞서 끊긴 대화를 이어가려 하자, 거리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칸바야시는 마치 나쁜 장난을 들킨 아이같은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긁으며 대답했다. 

     

     

     

     

    「──저기 그, 츠바키 씨 덕분에 좋은 트랙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후후, 고마워. 보내준 데이터 들어봤는데, 재즈 스윙 같은 변박자가 정말 근사하던걸. 역시 요헤이 군은 절대 음감을 타고났구나, 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샘플링을 프로그램으로 만진 건 사이몬이지~……」

    「기계를 사용한 건 나지만, 그건 확실한 요헤이의 곡이야.」

     

     

     

     

    겸손한 칸바야시를 선수치듯 사이몬이 말을 이었다.

     

     

     

     

    「나는 기계를 매뉴얼 대로 만질 수는 있지만, 그 음원을 힙합 비트로 편곡하는 센스는 없어. 역시 츠바키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는 네가 더 위일지도 몰라.」

    「아~ 됐어, 그러지 마. 그렇게 칭찬해 봤자, 네가 열심히 프로그램으로 만져주면 그게 꼭 애들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꼴사납다고…젠장, 내가 꼭 배우고 만다.」

     

     

     

     

    사이몬의 커버에 칸바야시는 민망한 듯이 뺨을 긁었다. 창피해하는 것은 분명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기계에 약하다는 칸바야시의 단점은 그 당시 유독 심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계 그 자체보다는 디지털에 약했다. 피아노 조율은 섬세하고 완벽하게 해내지만, 디지털 손목시계의 시간 맞추기는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으니 어지간한 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매니악한 구시대적 손목시계 같은 것은 능숙하게 고쳤다.

     

     

     

     

    ──요헤이 군의 감각은 물질적(Solid) 인 거야──라는 것이 츠바키의 평가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소리를 공간에 존재하도록 잡아두는 재능이라고 한다.

     

     

     

    그 재능은 사이몬도 알고 있었다. 프로그램 사용을 자신에게 맡긴 것을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칸바야시는 기분 좋게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삐딱한 말을 하는 것은 츠바키 앞이기 때문이라는 것을……사이몬은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앤틱한 샘플러라도 찾아볼까, 사이몬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요헤이도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늘겠지만……그걸 커버하고도 남을만한 것이 있잖아. 뭐든 혼자서 해야 할 필요는 없어.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나도 너와 팀을 짠 거야.」

    「엄청난 칭찬 세례네, 나오아키라 씨. 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신뢰하고 있거든. 요헤이는 나의〝야차〟니까. 」

    「칫. 그렇게까지 얘기하면……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

     

     

     

     

     

    토라진듯 입을 삐죽이는 칸바야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 그 시선을 피하듯 칸바야시는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MC야차와 MC수라. 그 두 사람의 전설적인 환영 래퍼 무뢰관. 사이몬에게 맞는〝MC야차〟. 그것이 칸바야시가 추구하는 래퍼로서의 이상향이었다. 과거 무뢰관의 라이브를 보러 갔을 당시, 충격을 받았던 그 날. 무뢰관을 향한 동경심에 관해 얘기하는 사이몬에게 “함께 랩을 해주겠다” 고 칸바야시가 말을 꺼낸 것이 XXXX(쿼드라 엑스)의 시작이다.

     

     

     

     

     

    ──야차의 압도적인 재능,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수라의 지성과 이론이야. 이 둘이기에 비로소 무뢰관의 음악,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탄생할 수 있는 거지. 

    ──그럼 내가 당신의〝야차〟가 돼 줄게. 그러니까 사이몬, 나와 팀을 짜자. 내가 당신을〝수라〟로 만들어주겠어.

     

     

     

     

     

    그날, 두 사람의〝동경〟이〝목표〟로 변화했다. 그리고 츠바키 역시 그곳에서 음악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무뢰관의 음악은 특별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음악〟각자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마음이, 영혼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분명하게 이어진다. 어쩜 이렇게 근사할까.

     

     

     

     

     

    그 이후 츠바키도 다시금〝사람과 사람을 잇는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무뢰관에서 시작됐다. 그날의 감동이 꿈으로 변하고 목표가 되어 이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사이몬이〝나의 야차〟라고 부르는 것을 칸바야시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이상 겸손을 떨 수도 없다. 그 대신 빈 잔을 내미는 것을 선택했다. 

     

     

     

     

    「사이몬, 한 잔 더 줘.」

    「나도 같은 거로.」

    「츠바키 씨도? 이거 그냥 혼합 주스인데.」

    「괜찮아. 나오아키라씨가 만든 혼합 주스 좋아하거든.」

    「논-알콜 칵테일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카운터에 걸터앉은 두 사람을 보며 미소 띤 얼굴로 과도를 준비하는 사이몬. 고개를 든 칸바야시가 그 모습을 보고는 삿대질을 했다.

     

     

     

     

    「뭐어? 너, 웃기지 마……츠바키 씨, 이 자식 나만 있을 땐 라임 같은 거 넣지도 않았어! 태연한 표정으로 태도 싹 바꾸는 거 봐. 안경잡이 주제에!」

    「네가 한 잔 더 주문할 걸 아니까 그런 거야.」

    「거짓말하시네. 있잖아, 츠바키 씨. 이 자식 분명 츠바키 씨 주문이라고 서비스하는 거야. 안경잡이 주제에, 아직 신혼이라고 하는 짓이 완전 음흉하다니까!」

    「신혼은 둘째 치더라도 안경은 아무 상관 없잖아, 안경은.」

    「아하하핫!」

     

     

     

     

    두 사람의 투닥임을 본 츠바키가 아주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의연하던 츠바키의 얼굴이 이럴 땐 앳돼 보였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휘어진 두 눈이 칸바야시를 향한다. 그 시선에 살짝 가슴이 철렁한 칸바야시는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오아키라 씨도 재밌지만……요헤이 군도 표정이 정말 좋아졌어.」

    「허……무슨 소리야? 갑자기.」

    「난 바에 오랜만에 왔잖아. 요헤이 군을 처음 만난 그날 일이 떠올라서. 그 당시의 요헤이 군은……좀 더, 아무것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느낌이었거든. 온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가시 돋친 목소리에 눈이 아주 싸늘했지. 조율되지 않은 건반 소리처럼 들쭉날쭉한 상태였는데──」

     

     

     

     

    추억에 잠긴 츠바키 앞에 고블렛 잔이 놓였다. 붉고 선명한 액체에 녹색 라임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다.

     

     

     

     

    「──지금은 아주 부드러운 울림이 전해져 와. 뭐랄까……클래식에 비유하자면 ‘트로이메라이’ 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야.」

    「……츠바키 씨의 그런 비유법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간지러운 말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어.」

    「츠바키의 공감각적인 표현을 의역하려면 늘 애를 먹지. 그걸 위해 언어학을 전공한 거나 다름없어.」

    「둘 다 말이 심한 거 아냐?」

     

     

     

     

    놀림을 당하는 대상이 칸바야시에서 자신으로 바뀌자, 이번에는 츠바키가 「정말!」 이라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름답다」 와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라는 감상이 동시에 칸바야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득, 생각을 시작한 머리가 멋대로 옛일을 회상해 냈다.

     

     

     

     

    가정불화. 보호시설 사람들의 싸늘한 눈. 어른이라는 존재를 믿지 못하고 들개처럼 살던 그때. 결국 야쿠자까지 되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못한……그런 생활을 하던 과거. 매일, 그리고 또 매일 매일.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가슴 한구석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나날──그리고 그러한 나날의 끝에서 마주친 다정한 피아노 음색. 

     

     

    과거 자신의 아픔을 칸바야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밤, 자신을 이끌어준 피아노 소리가, 츠바키가, 사이몬이 자신을 얼만큼 구원해주었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둘이 함께 음악을 한다는 게 나는 너무나 기뻐.」

     

     

     

     

    다시금 이야기를 이으며 츠바키가 잔을 입가에 댔다. 붉고 푸른 색의 칵테일이 혀 위로 미끄러지며 목을 타고 넘어가는 상쾌함을 느낀다. 그리고는 잘근 씹듯이 중얼거렸다.

     

     

     

     

    「음악이라는 건 역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거야.」

     

     

     

     

    그 말은 츠바키의 꿈이었다.

     

     

     

     

    「나오아키라 씨와 요헤이가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주고 있지. 무뢰관의 라이브를 보러 간 그날 이후로 많이 생각해 봤지만……난 결국 그렇게 결론 지었어.」

    「맞아. 요헤이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무뢰관이라는 존재를 목표로 바꿔서 연결해 주었어.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하지.」

    「……처음 그걸 증명한 건 저 피아노지만.」

    「응?」

    「아무것도 아냐.」

     

     

     

     

    그 말을 끝으로 칸바야시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에 닿은 잔 너머로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츠바키라는 여성을 향해 칸바야시가 품은 감정은 잔잔한 친애감 뿐만이 아니었다. 츠바키는 칸바야시에게 있어 비 오는 밤 구름 사이로 비친 달빛이었다. 가치가 없다고 여겼던 자신을 인정해 주었다. 피아노를 연주하게 해주었다. 「그 재능은 특별하다」 고 말해주었다. 청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감정을 사랑이라 자각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 데도 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츠바키가 이끌어준 길에서 사이몬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날,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날,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그날, 무뢰관의 라이브에 데려가 주지 않았다면……

     

     

     

     

     

    「수라와 야차를 목표로 하는 게 다가 아냐. 무뢰관, 뛰어넘을 거지?」

    「그럼.」

    「물론이지.」

     

     

     

     

    미소짓는 츠바키를 향해 사이몬과 칸바야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이 있었기에 칸바야시는 지금 이곳에서 음악이라는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 츠바키도 사이몬도, 칸바야시에게 있어 정처 없는 밤길을 비춰 준 따스한 빛이다. 감사라는 두 글자로는 아무리 해도 부족할 만큼.

     

     

     

    츠바키의 미소가 보고 싶다. 하지만 사이몬의 미소도 칸바야시는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속으로 가슴앓이를 해도, 두 눈에 서글픔이 어려도, 그들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낼 수 있다면……그건 그들에게 인생을 구원받은 칸바야시 요헤이의 긍지다.

     

     

     

     

    그런 칸바야시의 속마음을 사이몬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마음 써주는 듯한 행동은 멋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저 츠바키의 미소를 지키며 셋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녀가 행복해 보이는 것. 츠바키와의 결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계속해서 증명하는 것. 그것이 사이몬에게 있어 칸바야시의 긍지에 보답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사랑스러운 동백꽃 한 송이를 사이에 두고……그러한 시간이, 부드러운 이중주 음악에 감싸이듯 따스한 밤이, 부디 영원히 지속되기를 조용히 바랐다.

     

     

     

     

     

     

    분명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

    말없이 울려 퍼지는 서투른 남자들의 시간이, 평온한 나날을 연주하고 있었다.


     

     

     

     

     

     

     

     

     

     

     

     

     

     

     

     

    1. 닭장 안에 닭이 올라가 앉아 쉴 수 있도록 가로질러 놓은 나무 [본문으로]
    2. 잔잔하고 느린 음악 계열 [본문으로]
    3. 한층 성장함 또는 세련되짐을 비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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