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플 번역 제1회:BAE】 Paradox Live Hidden Track "MEMORY"2021. 08. 25
줄거리
대인기 프로젝트 소설판이 등장! Paradox Live 종료 후, 「BAE」 「The Cat's Whiskers」 「cozmez」 「나쁜 녀석들」은 되찾은 평온 속에서 저마다의 과거를 떠올린다. 14명의 래퍼가 이뤄내고 싶어했던 마음의 원점이 네 가지 기억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 앤이 알렌, 하준과 만나 BAE 를 결성하기까지의 비화를 공개!
- 사이몬, 칸바야시, 츠바키 이 세 명의 아름답고도 덧없는 과거의 일상을 말한다 —
- 나유타와 시키의 만남, 그리고 산타를 믿는 카나타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
- 레오가 스이세키 조직에 가입한 직후, 이오리로부터 사츠키 그리고 호쿠사이와 함께 여름 축제에 선보일 무언가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그 의도는 과연…?
오직 이곳에서만 읽을 수 있는 오리지널 스토리가 가득!
그럼 제1회 「BAE」 의 이야기를 즐겨보세요.
Before Anyone Else.
──환영 라이브.
그것은 HIPHOP 문화에 의해 탄생한 새로운 스테이지 표현 형식. 특수 금속 물질인 ‘펜트메탈’ 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환영으로 비춰내는 환영 래퍼들은, 그 대가로 되살아난 트라우마의 환영에 시달리며 새로운 시대의 움직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네 명의 환영 래퍼 팀 앞으로 수수께끼 같은 초대장이 도착한다.
환영 라이브의 시조인 최강의 환영 래퍼 〝무뢰관〟의 홈이자, 과거에 사라졌을 터인 전설의 클럽, 〝CLUB paradox〟의 부활.
그리고 시작된 라이브 이벤트──Paradox Live.
얽히고설킨 야망과 음모, 각자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충돌하는 저마다의 꿈……
무수한 감정과 마음이 엇갈려, 때로는 경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수많은 인연을 낳는다. 그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는 스가사노 알렌, 연하준, 앤 포크너 이 세 명으로 구성된 신진 기예의 팀 〝BAE〟도 있었다.
전설적인〝무뢰관〟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은 부모와 어른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한 야망과 복수심으로 시작된 BAE 의 싸움은 함께 승부를 겨룬 래퍼들과의 교류를 통해 확실한 변화를 거듭했다.
그렇게 수많은 열정과 눈물 나누고, Paradox Live 는 BAE 가 아닌……팀 cozmez 의 우승으로 매듭을 짓는다.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들은 분명한〝이어짐〟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패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의 퀄리티로 높여야만 해. 하준! 앤! 알겠지!」
「네, 그럼요. 그건 저도 동감해요. 하지만, 앤?」
「일단 방 정리부터 하라고 했잖아!」
하준과 앤의 태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그들의 셰어하우스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Paradox Live 종료 후.
대회 중에는 「지금은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다」 는 이유로 살짝 눈감아 주었던 알렌의 어질러진 방은 마침내 팀 동료인 두 사람이 내린 특별조치, 즉 ‘대청소’ 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치움, 버림, 비움〟 이 기본. 불필요한 물건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 우선이건만, 알렌의 경우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 대부분이 음향기기와 산더미 같은 레코드였으니. 알렌의 과거를 배려해 「되도록이면 버리지말고 정리하자」 는 방침을 정한 탓에, 한차례 방에서 꺼내 놓은 짐들이 그대로 거실을 침식해 가고 있었다. 그 덕에 집안이 마치 중고 샵 같은 상태였다.
「정말이지, 알렌은 무질서하게 짐을 모아두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군요. 사람이 아닌 다람쥐로 태어났다면 여기저기 도토리를 묻어두고 잊어버릴 것 같네요.」
「후후, 다람쥐 알렌 좋네. 귀여워. 먹이 주머니 잘 어울리지 않아?」
「너희들……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리하는 데 쏟는 노력에 대한 불만을 알렌 괴롭히기로 발산하는 하준과 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였다. 알렌의 짐은 그러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런데 정말 용케 이만큼 모아뒀네요. 이곳으로 이사 와서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요.」
「많은 일이 있었지. Paradox Live 가 시작되면서 특히……알렌이 방심하다 cozmez 의 KANATA 에게 펜트 메탈을 빼앗기고, 하준이 The Cat's Whiskers 의 콤프라 대마왕한테 디스 당하고 한동안 틀어박혀 나오지 않기도 하고, 하준이 메탈 침식에 빠져서 나와 알렌이 정신세계에 뛰어들어 구하러 가기도 하고……」
「회상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은데, 앤.」
「저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초이스군요. 앤의 꼴사나운 모습도 회상해 드릴까요? 예를 들어 어떤 노트를 냄비 받침으로 쓴 사건이라든지.」
「잠깐만, 그건 라이브랑은 상관없는 거잖……어라?」
문득 옷장을 정리하던 앤의 손이 멈췄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알렌이라면 묘한 영상 CD 같은 걸 숨겨 놨을 리는 없을 테고.」
「그런 거 없다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래, 앤?」
앤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조금 오래된 모델의 트랙 재킷 때문이었다. 색감이 선명한 것이 누가 봐도 스트릿 패션 같은 제품. 그걸 본 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아직 갖고 있었어?」
「아직이라니……그거야 당연하지. 하준도 갖고 있지?」
「……뭐, 아직 입을 만 하니까요. 버리기도 아깝고요.」
「그렇구나. 흐응……」
색감이 살짝 바랜 옷을 바라보며 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Paradox Live 에서, 그리고 세 사람이 BAE 로 활동하던 중에도……힘든 일도 있었다. 울고 싶은 밤도 있었다. 그럼에도 셋이서 함께 랩을 했기에 즐거웠다.
「……만약 그때, 랩을……알렌과 하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짐 정리로 인한 피로 때문일까. 그리운 듯이 눈을 감자 앤의 의식은 추억 속을 맴돌았다.
이는……앤에게 있어 ‘모든 것의 시작’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억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미움을 받듯이 조용하던 어느 날의 방과 후였다.
때마침 친구들과 예정이 맞지 않아 시간이 붕 뜬 방과 후 오후 4시. 취주악부의 플룻 연주 소리가 제법 아득하게 들렸다.
긴 머리에 치마 자락을 흩날리며, 곧게 뻗은 다리 아래 실내화를 신고 새하얀 복도를 거닌다. 얇은 솔이 타일을 두드리고 가벼운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맥없는 발소리는 다른 누가 곁에 있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앤은 이 실내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교복에 공을 들이는 학교는 많아도 이 납작하고 유치한 신발은 어디든 다 똑같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앤이 자기 자신다울 수 있는 스커트 룩으로──입을 수 있는 국제학교 역시 마찬가지. 모든 학생을〝아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어른들의 의사가 교복의 존재보다 현저하게 느껴졌다.
혹은 그 가벼운 발소리가 돌아갈 곳 없는 자신의 발걸음을 야유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물론 집은 있다.
하지만 열 여섯 살의 앤에게 그곳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앤에게는 방과 후 곧장 귀가한다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동네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도 의외로 한계가 있었다. 아이 쇼핑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연달아 하다 보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앤은 정처 없이 교내 곳곳을 걸었다.
대개는 장난삼아 친구의 부 활동을 엿보러 가거나, 도서실 또는 매점 등을 들락거리곤 했다. 그럴 때면 탁탁 울리는 실내화 소리가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싫어한들, 집도 학교도 결국 부모에게 묶여있는 열 여섯 살의 부자유한 ‘소리’ 였다.
마침내 해가 지면 부 활동이 끝난 친구를 붙잡아 보지만, 결국 체념하고 홀로 거리로 나가, 보도시간[각주:1] 을 아슬하게 맞춘 시간에 귀가한다. 집에 돌아오기 전, 화장을 완전히 지우고 붙임머리를 뗀다. 그렇게 남자다운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면, 앤이 자기 자신답게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은 그때 끝이난다.
하물며 신데렐라의 마법도 날이 바뀌기 전까지는 유효하건만.
그 다음엔 집으로 돌아가, 늦게 온 이유에 대해 변명한다. 핑곗거리는 대체로 스터디다. 「다음부턴 좀 더 일찍 돌아오렴」 이라거나 「엄마 혼자서 너무 외로웠어」 라는 대사를 들으며, 끊임없는 두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흘려 넘긴다.
그게 바로 앤의 ‘일상’. 아무리 지겨워도 결국 모자지간으로 지내는 것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열 여섯 살인 앤의 현실이었다.
「……재미없어.」
중얼거림은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해가 지는 시간의 우울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으나, 그날은 특히 앤의 기분이 바닥을 쳤다. 분명 어젯밤 꾼 꺼림칙한 꿈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그날 앤의 발길은 아무 용건도 의미도 없이, 평소에는 가지 않던 상급생층까지 뻗어나갔다. 휴식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걷다 복도 끝에 다다랐다. 발길을 돌리며 매점에 가서 음료수라도 살까 하는 생각을 하던 그때, 무언가가 귓가를 울리는 듯했다.
「……누가 노래를 부르나?」
귀를 기울이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느 교실에서 새어 나온 그 소리는 분명 누군가의 노랫소리였다. 하지만 합창 대회에서 부를 법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 시대에는 이를 표현하기 위한, 더욱 정확한 표현이 존재했다.
「아냐, 이건……랩인가?」
그러고 보니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앤보다 한 학년 위인 학생 중, 단둘이서 힙합 활동을 하는 선배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힙합은 유행하고 있다. 환영 라이브의 박력에 반해 래퍼 흉내를 내거나, 그와 동시에 널리 퍼진 뉴웨이브 B계 패션에 물든 동급생도 있었다. 그러나 앤은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러니 뭐, 소문의 선배라는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싶었으나 이는 앤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다. 친해지면 방과 후에 시간 때우기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앤은 문에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학생 두 명이 마주 보고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휴대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틀고, 교실을 스튜디오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눈물겨운 노력이네, 살짝 웃음을 터뜨린 앤은 「안녕, 나도 껴도 돼?」 라고 가볍게 말을 꺼낼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
열기가 앤을 맞이했다.
그것은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운,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생생한 감정이었다.
선명하게 울리는 리듬에 에고이즘을 실어 라임을 맞춘다. 야성적인 충동을 이성적으로 포장해, 몰아붙이듯 거침없이 쏟아지는 목소리가 심장을 요동치며 뜨겁게 했다. 노래라 부르기에는 더욱 강하고, 자신의 주장을 몰아붙이는 듯한, 탄환과도 같은 목소리의 폭풍. 벽 너머로 들리던 두 사람의 노래가 여과 없이 온전히 앤의 몸에 흘러든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후렴구를〝펀치라인〟이라 부르는 것을 앤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은 분명히 있었다. 뇌를 흔들고, 귀에 박혀 들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후렴구가 울리고 있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프로와 비교 할 수 없겠지. 교실에서 휴대폰으로 튼 음악의 음질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열기는……적나라하다 못해〝우리는 이곳에 있다〟고 세상을 향해 목이 쉬도록 당당하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 열기로 가득 찬 교실에서, 창문을 통해 비친 석양의 색채는 눈부셨다.
자칫하면 눈물이 터질 것처럼, 눈이 부셨다.
「……저기, 넌 누구야?」
상대가 말을 걸어온 탓에 어느새 음악도 랩도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 두 명 중 머리가 뾰족한 남자──알렌──는 난처한 기색이었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가진 남자──하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앤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노래에 몰입한 탓일까. 살짝 숨이 차고 땀이 났다. 두 사람이 남긴 여운이 여전히 교실 안에 남아있어, 그곳을 지난 붉은 햇빛이 전등처럼 앤을 비추고 있었다.
환영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랩을 쏟아낼 때와 같은 목소리로 「누구야?」 라는 말을 들으니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앤. 나는 앤 포크너야.」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어떻고 몇 반인지. 그 순간, 그 이름 네 글자를 대는 것 외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어쨌든 세 사람은 그렇게 처음 서로를 마주했다.
언젠가〝BAE〟라는 이름을 대기에는 아직은 먼 두 사람과 한 사람.
석양이 드리운 교실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 무렵, 방과 후 교실에서 랩 연습을 하는 것은 알렌과 하준의 일과였다. 처음엔 알렌 혼자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하준이 참가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알렌이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었다.
남몰래 수집하던 힙합 관련 레코드를 부모님이 태워버리고, 알렌이 하준의 곁으로 굴러들어온 이후 하준이 〝알렌의 랩〟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급생이 신기해하며 보러 오기도 했으나 그 마저도 얼마 안 가 줄었다. 결국 방과 후의 연습 시간은 알렌과 하준의 ‘닫혀버린 공간’ 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본 적도 없는 하급생이 찾아와 거리낌 없이 멋대로 발을 들이려 하는 것이 알렌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렇나 그 하급생, 자신을 앤 포크너라고 소개한 청년은 며칠이 지나자 방과 후의 연습 시간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겁이 없는 데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처세술을 활용해 유연한 대인관계를 만드는 하준과는 또 달랐다. 종잡을 수 없고 당당하지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동은 하지 않는다. 봄에 피는 벚꽃처럼 부드러운 얼굴로 가을날처럼 건조한 분위기를 풍긴다. 친구가 적은 알렌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앤을 처음 본 순간, 알렌은 석양 속에서 느낀 묘하게 짙게 비치던〝그림자〟가 왠지 신경이 쓰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연습용 트랙을 마무리 짓고 쉬려하자, 앤은 초코 과자를 한 개를 집어 지휘봉처럼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근데 교실에서 연습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역시 스튜디오 같은 데에서 하는 게 낫지 않나?」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앤의 물음에 알렌이 대답했다.
「여긴 우리의 일상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감(靈感) 이 떠오르기 쉽고, 칠판을 쓸 수 있는 것도 의외로 감사한 일이야. 후렴구를 썼다가 지우기도 편해서 하준이랑 같이 보고 공유할 수 있기도 하고.」
「듣고보니 그런 것 같네.」
「그리고 연습 때마다 매번 노래방에 가는 것도 경제적이지 않지.」
「누구 집에 모여서 연습하고 그런 건 안 해?」
「……나, 지금은 하준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거든.」
「흐음?」
고개를 갸웃대던 앤과 하준의 눈이 마주쳤다.
「집에서 하면 알렌이 가사를 적은 종이 뭉텅이로 어지를 게 뻔하니까요.」
「그래..」
앤의 맥없는 맞장구에 하준은 억울한 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연습이 계속 이어질 때가 많아서 가끔 저녁을 굶기도 하는데──제가 아침부터 준비한 '닭 한 마리' ……탕 요리인데요. 결국 다음 날 아침에 국밥으로 먹은 적도 있어요. 알렌 사비로 재료를 전부 다시 사긴 했지만요.」
그건 좀 너무했다, 라는 시선을 보내는 앤을 향해 알렌은 멋쩍은 듯이 뺨을 긁었다.
「그러니까, 그런 이유로……템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연습 시간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해서 집밖에 연습 장소를 마련한 거야.」
「알렌은 랩 중독이야?」
「힙합 바보죠.」
「아. 딱 알겠다.」
「너, 너희들 진짜……」
하준의 페이스에 휘말리면서도 알렌은 그의 태도에 조금 안심했다. 처음에 하준은 얼핏 보면 여자 같은 앤에게〝묘하게 좋은 미소〟로 대처했다. 그건 좋지 않은 징조다, 라고 알렌은 생각했다.
하준은 양의 탈을 쓰고 있다. 알렌이 아는 진짜 하준의 모습은 위험한 도S 성향에 성격이 더럽다. 더군다나 겉이든 속이든 태도 만큼은 부드러워서 그만큼 입이 험하기도 하다. 그에 비해 학교 내에서는 늘 영업용 미소를 흩날리며〝미소의 귀공자〟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처세술이라고는 하나, 그 덕에 여자들의 추종이 끊이질 않았다.
한 번은 하준의 추종자들끼리 크게 싸움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하준은 한 사람씩 귓속말하는 것으로 눈 깜짝할 새 사태를 수습해버렸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알렌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캐물었으나, 하준은 그저 미소 지으며 입가에 손가락을 세울 뿐이었다. 알렌은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무서웠던 것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다만, 알렌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도미노는 깔끔하게 쓰러지면 기분이 좋죠.」 라는 말을 했다. 알렌은 하준을 신뢰하고 있지만 그런 면은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준이 앤을 상냥하게 대한 것은 마침 알렌이 앤이 남자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딱히 그 점을 파고들어 알아낸 것은 아니다. 그저 앤이 풍기는〝그림자〟가 신경 쓰여 자세히 보다가 분위기나 골격으로 눈치를 챘을 뿐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건지 알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앤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묘하게 기뻐하는 듯했고 하준은 그런 앤에게 살짝 감탄했다. 자신답다는 생각이 드는 패션을 선택하는 그 성격이 하준에게 있어서는 호감으로 다가왔던 듯했다.
그러한 이유로 앤은 알렌뿐만 아니라 하준에게 있어서도 인상이 나쁘지 않은 좋은 후배였던 것이다.
「근데 있잖아. 두 사람의 연습을 본 지도 며칠이 지났는데……」
거꾸로 돌린 의자에 앉아있던 앤이 등받이 위로 팔을 걸치며 말했다.
「랩 배틀이랬나? 랩 스테이지라는 게 원래 그렇게 서로 경쟁하는 거야?」
「아니, 이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해.」
알렌이 말했다.
「뭐어……프리스타일 MC배틀은 서로 맞받아치니까 어휘 레퍼토리를 넓히는 훈련이 되기도 해. 둘이라서 가능한 연습을 하고있는 거지. 하지만 라이브 하우스나 클럽에서 열리는 대회는 '배틀 형식' 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건 확실해.」
「맞아. 그런 이미지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 측면이고, 차분히 앉아서 준비해온 가사로 라이브를 하는 것도 당연해. 그게 바로 환영 라이브잖아.」
「그치? 그렇게 얘기해도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 그런 거야. 뭐, 우리는 결국 캐치볼 하는 느낌으로 연습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지. 연습 방법이 이것뿐인 건 아니지만 가장 실전에 가까우니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계기로 알렌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음악을 타인과 즐긴다는 문화가 없던 시대부터 조용한 사이퍼 붐[각주:2]이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프리스타일에 의한 랩 배틀 자체는 지금의 환영 라이브 운동의 뿌리 같은 거야. 올드스쿨한 래퍼가 보기에는 잘못된 길이라고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던 것 같고.」
「……어, 으음. 그런 거야?」
앤이 고개를 기울였다.
「알렌. 앤이 멍때리기 시작했어요.」
「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알렌도 하준의 말에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앤의 모습을 보아하니 완전히 따라오지 못한 표정이었다.
「아, 미안 앤. 좀 과하게 집중해버렸네.」
「괜찮아. 덕분에 알게 됐어. 나도 견학하는 사람치고는 모르는 게 너무 많기도 하고. 괜찮으면 랩에 대해서 이것저것 가르쳐줘.」
알렌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하준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 이유를 앤은 몇 초가 지난 뒤에도 알지 못했다.
「음, 그럼 어디서부터 얘기할까……넌 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어느 정도라고 해야하나, 일단 힙합이랑 랩의 차이가 뭐야?」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준이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했군요」 라는 표정을 지은 것은 이때뿐이었다고 앤은 생각했다.
「아~……그렇군, 거기서부터인가……」
「……아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면 넘겨도 되는데.」
한쪽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톡톡 두드리는 알렌의 모습 본 앤 역시 차츰 「잘못 물어봤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일단, 뭐라고 해야 하지……힙합 이라는 건, 나는 ‘삶의 방식’ 이라고 생각해.」
「응……?」
앤은 불안해졌다.
「그러니까 랩이라는 건 힙합으로 살아가는 자의 외침인 거지.」
「으응? 응. 응?」
앤은 이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내가 가장 얘기하고 싶은 건 환영 라이브지만, 거기엔 또 밑바탕이 되는 얘기가 있고. 아- 그래도, 맞다. 우선 힙합의 4대 요소, 역시 이게 필수지.」
「그런 거야?」
「응. 다시 말해서 DJ, MC, 브레이크 댄스, 그래피티. 나중에 거기에 지식이 추가돼서 5대 요소가 되는 거지만, 이중에서 MC라는 게 요즘 소위 말하는 ‘랩’ 이야.」
「그렇구나...」
「즉 ‘랩’ 이라는 건 힙합 표현의 수단 중 한 가지로, 그게 한층 더 진화한 게──맞아. 환영 라이브야!」
「우왓 깜짝이야! 갑자기 목소리가 너무 커.」
「나는 앞서 말한 5대 요소에 환영 라이브가 추가돼서 지금은 6대 요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얘기하는 래퍼도 있거든! 힙합이라는 건 그렇게 진화의 역사가 두터운 장르라, 그걸 앞서 나아간 환영 라이브가 진짜 역사에 남을 움직임인 거지!」
「으왓, 잠, 너무 가깝다니까!」
「그래도 무뢰관은 알지? 몰라? MC야차와 MC수라, 두 사람의 전설적인 랩이 환영 라이브의 존재와 함께 힙합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음악이라는 문화 자체를 진화시켰어. 뭐 이유는 몰라도 이 두 사람은 그 뒤에 갑자기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지금은 무뢰관이 일으킨 거대한 움직임의 물결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전 세계로 퍼지고 있어. 무뢰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환영 라이브가 음악을 한층 진화시킨 건 확실하지. 나, 처음으로 직접 환영 라이브를 본 순간 완전 장난 아니었거든. 그 유명한 무뢰관의 라이브는 아니지만……진짜 이건 귀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성이 눈에 박혀 드는 느낌? 분위기(공기)의 삼투압이 높아지면서 쾅! 하는 거 말이야! 그게 청각으로만 느끼는 것보다 더 대단하거든. 보다 직접적인 세계관이 전해짐으로써, 트랙뿐만 아니라 환영과 입체적인 가사가 전부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표현의 폭이 압도적으로 넓어지는 거야! 환영 라이브는 랩의 발전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즉 MC가 그래피티의 요소를 믹스한 상태에서 진화된 무대 표현인 셈인데, 앤도 관심 있으면 한 번 직접 라이브를 보는 게 좋을 거야, 진짜로! 여기서 멀지 않은 회장에서 공연을 하니까 접근성도 좋고. 아, 이건 사소한 팁인데, 역 뒤쪽에 있는 노래방 사장님이 환영 라이브 광팬이라 공연이나 근처에 있는 무대 전단지 같은 거 자주 가져다 놓으니까 꼭 체크하고! 물론 가서 직접 보지 않아도 엄청나다는 게 느껴지는 팀도 있는데, XXXX(쿼드라 엑스)는 이미 해체했지만 영상으로 봐도 쩔거든! 할 수만 있다면 해체 전에 라이브 가보고 싶었는데. 뭐 나는 XXXX 를 리스펙 하긴 하지만 음악성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다, 랩을 시작한 이상은 결국 언젠가는 그 사람들도 그렇고, 끝내는 시조인 무뢰관을 뛰어넘는 게ー」
「──알렌?」
하준의 미소가 반짝였다. 알렌은 그 표정이 노려보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한 소리 듣기 전에 단단히 준비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려는 말이 중구난방이니까 이제 막 시작한 제게 MC배틀을 계속 지는 거예요.」
「으아아……」
하준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들자 알렌은 털썩 주저앉았다. 쌓아 올린 블록을 밑에서 두드리듯 보기 좋게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알렌이 하준한테 가르쳐주는 입장이지? 근데 진 거야?」
알렌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앤은 하준에게 속닥속닥 귓속말했다.
「네, 알렌은 보다시피 골수 힙합 바보인데도 말이죠. 지금 들은 대로 말이 끝이 없는 데다 테크닉은 저보다 훨씬 위예요. 오히려 프리스타일 자체는 특기고요. 방금 제가 그에게 한 말이 결코 패배의 원인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준이 이긴 건데?」
「알렌은 즉흥 디스에 약해요. 힙합을 너무 좋아해서 가끔 상대방의 말에 동의해버리거든요.」
「그건……뭔지 완전 알 것 같아.」
그 후, 하준의 특기는 디스가 될 것 같다──는 말을 앤은 구태여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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